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언어없이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와 사고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고 이 둘을 때여 놓기는 어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어와 사고와의 관계에 대해 학문적으로 고찰해 보면 이 둘 간의 관계는 상식 수준의 대답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언어와 사고와의 관계에 대한 여러 견해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행동주의자들은 언어와 사고가 동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왓슨(Watson, 1925)은 사고는 발성이 수반되지 않는 말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고는 개인이 발성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속말(inner speech)이기에 언어의 한 형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왓슨의 견해는 스미스(Smith)의 실험에 의해 반박되었습니다. 스미스는 자기 자신에게 큐라레를 주사하여 발성기관 근육을 마비시킨 후에 사고가 발생하는지를 실험해 보았습니다. 스미스는 근육이 마비되었어도 의식이 계속 깨어 있었고, 머릿속으로 계산도 할 수 있었으며, 사람들의 대화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발성기관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사고는 여전히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언어와 사고가 동일하다는 왓슨의 생각에 도전하게 해 주었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행동주의자들과는 달리 언어와 사고와의 관계에 대해 이 둘이 구별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가장 극단적인 관점을 취하는 사람들로는 언어의 단원성(modularity)을 주장하는 촘스키나 포더(Fodor)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단원성 이론에 따르면 이 세상에 대한 표상은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생득적 구조(innate structure), 또는 단원(module)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외부에서 들
어오는 입력자극(input)은 이미 존재하는 단원을 불러내는(tigger) 역할을 담당하고, 이 불러내어진 단원들이 입력된 자극의 표상을 창출합니다(Fodor, 1983), 포더(1983)는 이러한 단원이 유전적으로 미리 정해져 있고, 독립적인 기능을 하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언어가 마음을 구성하는 독립된 단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롬스키(1975)는 특히 통사론의 단원성을 강조하며 언어 단원이 가지는 특징은 3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1. 언어 단원의 특성을 결정짓는 원리는 다른 영역의 특성을 결정짓는 원리와는 다릅니다
2. 언어 단원에 작용하는 원리들은 고유한 생물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언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격은 다른 영억 일반적인 학습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신경 손상을 입은 아동들의 인지행동에서 언어가 독립된 단원이라는 주장에대한 지지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윌리엄스 증후군은 일반적으로 정신지체를 보입니다. 이 환자들이 보이는 특이한 점은 인지능력에서는 심각한 손상을 보이지만 언어능력에서는 별다른 견함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밖에 언어능력과 비언어능력 사이에 심한 대비현상을 보이는 정신지체인 로라(Iaura)의 사례가 보고되기도 하였다(Yamada, 1990). 로라의 언어능력은 정신연령이 비슷한 정상 아동에 비해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으나, 비언어능력은 심한 손상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들은 언어가 인지와는 분리된 단원이라는 증거로 해석됩니다. 언어와 사고와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입장은 언어와 사고가 구별되어 있지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언어와 사고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 입장 사이에서도 여러 다른 견해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언어상대성(linguistic relativity) 이론입니다.
언어상대성 이론은 언어 간의 어휘나 통사의 차이가 인지적 차이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영어에서
는 '눈( ' 을 나타내는 단어가 하나인데 반해, 에스키모 언어에서는 눈'을 지칭하는 단어가 여러 개 있습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어휘적 차이로 인하여 에스
키모 인들은 영어권 사람들보다 더 많은 종류의 눈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올프(Whor)의 생각은 많은 학문적 관심을 불러 일으쳤습니다. 하지만 그 후 연구자들은 에스키모 인들이 눈에 대해 여러 어휘를 가지고 있지만 영어권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눈을 지각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며, 올프의 언어상대성 이론을 반박하였다. 또 다른 반대 증거는 뉴기니어의 대니 족은 2개의 색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흑백 이외의 다른 여러 색깔을 구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Heider, 1972). 이러한 증거들은 울프의 언어상대성 이론을 반박해 주고 있지만, 언어에 따라 사고의 패턴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악한 업장의 언어상대성 이론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색깔 어휘가 얼마나 자주 쓰이는가, 얼마나 부호화하기 쉬운가에 따라기억이 달라질 수 있다. 언어와 사고와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입장은 피아제(Piaget) 이론에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피아제에 따르면 언어는 독립된 능력이 아니라, 인지발달의 결과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인지능력 중 하나입니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인지가 발달하는 것과 같은 원리에 의해서 언어가 발달하기에, 감각운동기, 전조작기, 구체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의 인지발달 단계에 기초하여 언어에 대한 지식도 발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피아제의 인지발달 단계에서 감각운동기는 언어가 나타나기 전 단계로서, 이 시기의 영아들은 상징을 사용하지 못하고 세계를 감각과 운동을 통해서 이해합니다. 특히 이 시기의 아동들은 대상영속성의 개념을 갖지 못 합니다. 따라서 어떤 물체가 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면 그 물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다가 아동들은 감각운동기 말기에 물체가 자신에게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이러한 대상영속성 개념이 아동의 언어발달에 기초가 된다고 합니다(Sinclair-deZwart, 1969). 감각운동기 초기의 아동들은 대상물을 표상하는 상징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동들은 대상물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존재하지만 내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대상영속성의 개념을 갖게 되면서 아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대상물을 인식하게 되고 그것을 표상할 필요성을 갓게 됩니다. 그래서 시야에 존재하지 않는 물체를 표상하기 위해 상징을 사용하기 시작하게 되고, 이 것이 아동이 사용하는 첫 단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지와 언어의 연계성은 아동의 산출자료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영어에서 all gone' 과 같이 무엇이 사라진 것을 지칭하는 단어는 대상영속성 개념을 갖게 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증거는 우리나라 아동의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아동들에게서 '있다/없다' 와 같은 단어가 나타나는 시기와 대상영속성 개념의 성취와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Gopnik & Choi, 1990).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대상영속성은 언어습득에 필요한 선행조건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피아제의 견해는 언어발달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인지발달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인지선행설로 집약됩니다. 인지선행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인지가 언어에 선행된다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이 두 능력 간의 관게에 대해서는 조금석 다른 견해를 보입니다. 가장 강력한 형태의 인지선행설은 인지능력을 획득하는 것이 언어습득에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지능력이 없이는 언어능력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조금 약화된 형태의 인지선행설은 인지능력이 언어습득에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필요조건은 된다는 것입니다. 또는 언어가 일반적인 인지능력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인지능력의 습득이 특수한 언어능력에 필수적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 다른 건해는 언어와 다른 형태의 인지를 관장하는 제3의 기제의 내재가 언어에 필수적이라고 제안한다. 에를 들어, 분류하고 범주로 묶고 규칙을 유추하고 위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은 여러 인지영역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능력인데, 이러한 능력이 언어발달에 관역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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