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 인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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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정서 인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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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와 인지  


심리학자들의 궁금증은 정서 경험과 신체의 생리적 반응 간의 관계에서 그치지 않고, 정서 경험에서 우리의 느낌과 생각(혹은 판단)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갖는가 하는 문제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슬픔을 느끼는 것과 슬프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슬프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사이에 어떤 상호작용이 있는지, 아니면 이 두 과정이 전혀 별개의 작용인지를 밝히려는 연구자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정서와 인지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지각이나 기억 같은 인지 과정이 정서의 중요한 요소라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스탠리 샥터(Stanley Schachter)는 일찍부터 정서와 인지의 상호작용 가설을 제안하였고, 제롬 싱어(Jerome Singer) 역시 비슷한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이들은 정서에는 신체적 각성과 인지적 해석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제안을 2요인이론(two factor theory)이라고 부릅니다. 정서 유발 자극에 대한 신체의 각성 반응을 인식했을 때 정서 경험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점에서 이들의 입장은 제임스-랑게 이론과 일치하지만, 각각의 정서 경험에 따라 고유한 신체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캐논-바드 이론과 유사합니다. 따라서 샥터와 싱어의 2요인이론에서는 신체의 생리적 반응에 대한 인지적 해석을 중요시합니다. 유사한 신체 반응이 나타났을 때 상황에 따라 이를 달리 해석함으로써, 똑같은 심장 박동이 분노로 느껴지기도 하고 기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샥터와 싱어의 이론은 우리의 정서 경험에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이들의 제안에 따르면, 신체 반응에 대한 인지적 해석이 정서 경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므로, 신체 반응의 강도에 의해 정서 경험의 강도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체 반응은 한 가지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어느 정도 지속되기 때문에, 앞선 상황에서 발생한 신체 반응이 그다음에 발생한 상황에 대한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취업을 위한 면접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던 어느 날 조깅을 하고 집에 막 들어섰을 때 면접 시험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는다면, 낮잠에서 깨어나 나른한 상태에서 합격 통보 전화를 받았을 때보다 그 기쁨이 더 강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체 반응에 대한 인지적 해석을 통해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는 2요인이론에 따르면, 조깅을 하면서 신체의 각성 수준이 높아진 상태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심장 박동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고, 따라서 기쁨의 강도도 더 크게 해석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적 해석이 정서 경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2요인이론은 의도적으로 미소짓는 표정을 만들 경우에도 행복감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안면 피드백 가설과 대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샥터와 싱어의 이론에 따르면 미소를 지을 상황이 아닌데 볼펜을 가로로 입에 물고 안면 근육의 특정한 움직임을 일으킨 경우에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스운 만화를 읽고 있던 상황이라면 볼펜을 가로로 입에 물고 있을 때 그 만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동일한 신체 반응 또는 안면 근육의 움직임이 인지적 해석에 따라 다른 정서 경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2요인이론의 핵심입니다.


정서의 기능


앞서 살펴본 정서의 개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정서는 신체 반응과 정의적 경험, 인지적 평가 등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상태입니다. 이러한 정서 상태는 인간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협(Hebb)이나 맨들러(Mandler) 같은 심리학자들은 정서가 진행 중인 활동을 방해하고 행동을 혼란시키며,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흐리게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도 감정은 이성적 판단을 그르칠 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윈은 1872년에 발표한 '인간과 동물들의 정서 표현'이라는 연구에서 정서는 동물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능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윈에 따르면, 정서 표현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관한 정보를 다른 동물에게 전달하는 신호로 작용하고, 행위를 위한 준비 태세로 작용하기도 하므로 동물의 생존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공격해 오는 개를 발견한 고양이가 송곳니를 보이며 귀와 털을 세우고 등을 굳힌 채 으르렁거리는 것은 상대의 공격에 맞서 자신도 공격하겠다는 명백한 신호이며, 개가 공격을 포기하고 돌아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임상 신경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역시 자신의 임상 경험과 관찰을 토대로 집필한 '데카르트의 오류'(Damasio, 1994)라는 책에서 정서와 감정은 사고 과정의 단순한 부산물이나 장식물이 아니라 합리성 혹은 이성적 판단의 필수 요소라고 제안하였습니다. 다마지오는 특히 사회적 상황에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정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논리적 사고 기능은 보존되어 있으나 정서 기능에 장애가 생긴 뇌손상 환자들은 논리적으로는 움직이지만 현실성이 없는 무모한 판단이나 행동을 하다가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관찰 결과였습니다.

입이나 맨들러처럼 정서의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든, 다마지오처럼 긍정적 영향을 강조하든, 정서가 우리 행동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면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음에서는 정서의 기능을 유기체가 주어진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도록 돕는 대처 기능과 다른 사람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고 유대를 증진하는 사회적 의사소통 기능으로 크게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처 기능


정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모호한 상태에서는 발생하지 않으며, 반드시 정서를 일으키는 구체적인 이유와 대상이 있습니다. 정서는 기본적으로 유기체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으로 주의를 돌려서 정서를 불러일으킨 대상을 인식하고 그에 적절한 대응 행동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유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형이나 맨들러가 지적했듯이 정서가 진행 중인 활동을 방해하고 행동과 사고의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진행 중인 활동을 계속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발생했다는 신호일 수도 있기 때문에 유기체의 적응에 유익한 것입니다. 실제로 플루칙(Plutchik, 1980)은 정서가 긍정적, 목적적, 적응적으로 행동을 조직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제안한 기능적 관점에 따르면, 예를 들어 위협적인 자극으로부터 달아나는 행동을 하게 함으로써 방어와 보호를 가능하게 해 주는 정서가 바로 공포이며, 위협적인 자극을 공격하도록 신체를 준비시키는 정서가 분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분노나 공포, 혐오 같은 부정적인 정서도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좋은' 정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정서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에 적응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여 큰 곤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사회적 의사소통 기능


사람들은 표정이나 몸짓 등을 통해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을 전달합니다. 특히 영유아의 일굴 표정은 자신들의 요구에 적합한 돌보기 행동을 유도하는 특수한 의사소통 신호로 작용합니다. 정서는 이처럼 자신의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알릴 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방식을 조절하는 데도 유용하게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머니에게 특별 용돈을 받으려고 한다면 우선 어머니의 표정이나 목소리 등을 통해 어머니의 기분을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 것입니다. 또, 상대방과 친밀한 상호작용을 하고자 할 때는 미소를 지을 것이고, 상대방의 접근을 거부하고 싶을 때에는 불쾌한 표정을 지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정서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동안 발생하기 때문에 정서는 대인 관계의 본질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수용하거나 밀어낼 때에도 정서가 바탕이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정서는 사람들 간의 거리를 조정하는 역할도 담당합니다. 예컨대, 기쁨은 관계를 촉진하지만, 분노는 상처를 주는 관계를 깨뜨리는 데 필요한 행동을 동기화합니다. 이처럼 정서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때로 우리는 정서 표현을 통제할 필요를 느끼기도 합니다.


정서 조절


정서가 적응적 가치를 지니며 여러 가지 사회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언제나 정서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수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시 사회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정서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수용하는 것이 적응을 오히려 방해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서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절합니다. 불쾌한 정서를 경험했을 경우 사람들은 기분 전환을 통해 유쾌한 정서를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긴장과 불안이 느껴지면 긴장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거나 다른 데로 주의를 분산시켜서 잠시라도 불안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씁니다.

정서 조절의 필요성은 대체로 분노, 슬픔, 실망, 공포, 긴장 등 부정적 정서 유발 상황에서 발생하지만, 우리가 흔히 '표정 관리'라는 말로 표현하듯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슬프고 불행한 일을 겪고 있는데 자신에게만 기쁜 일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좋은 의미에서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러 가지 정서 조절 책략 가운데서 무조건 정서를 억압하거나 표정을 억제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고 효과도 적다고 합니다. 정서를 무조건 억누르면 생리적인 각성이 증가하고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인지적 기능도 상대적으로 저하됩니다.

그보다는 정서를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더 효과적인데, 정서 유발 상황을 인지적으로 재평가하여 냉정함을 유지하거나 문제 해결 지향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돌리는 것이 좋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자신의 정서 상태나 그 원인에 대해 장기간 심사숙고하는 것보다는 즐거운 활동(예컨대, 운동이나 영화, 음악 감상 등)에 참여하여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 정서 조절에 더 효과적이라고 제안하였습니다. 심사숙고는 부정적 정서를 오히려 강화시키지만, 주의 분산은 이를 감소시키기 때문입니다. 정서 조절 능력은 스트레스 대처 능력과도 관련이 있으며, 점점 더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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